─여러분의 최고 영광의 시기는 언제였나요?
전 지금... 이 아니라, 역시 학창시절이었던거 같습니다. 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만화에 나오는 청춘들처럼 스포츠나 연애나 다른 뭔가에 몰두하지 않고 그냥 보냈던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기였습니다. 특히 중학교 2학년 때가 즐거웠지요. 언제나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세상은 늘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게임은 한없이 즐거웠지요. 특히 중2 때에 비트매니아가 나와서 학교에서 애들이 학교 컴퓨터로 쉬는 시간에 비트매니아 게임을 하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처럼 온갖 종류의 게임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고, 집에는 아직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서 애니를 볼 수도 없었고, 콘솔 게임기는 게임잡지 안에만 있는 물건이었고, 컴퓨터 게임을 사기 위해 용산을 방문해야 했죠. 그즈음 인기를 끌기 시작한 피씨방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스타에 열중하고 있을 때, 저와 친구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하며 매일을 보냈습니다. 지금이라면 몇 판하고 질려버릴 게임을 몇 달이고 비슷한 맵을 이용해서 계속 즐겼던 겁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텔레토비 개그 같은 유치개그를 하며 낄낄 거리며 놀았고, 아직은 좀 덜 히키히키거리던 시기라 밖에서 농구도 하곤 했지요. 그래도 주로 즐기던 것은 게임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만나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컴퓨터 게임도, 게임 잡지도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 이것들을 보는 것이 얼마나 즐겁던지. 게임잡지는 아직도 하나 나오고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2003년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재미가 없어지고 정보지의 역할만 하는 느낌입니다. 내 생일이라고 게임잡지를 선물해주신 외숙모와 그것을 받고 즐거워 했던 그 시절의 저 자신을 생각해보면 참 서글픈 일이지요.


─단순히 시절이 좋아서 그 시기를 절정기라 꼽는 것은 아닙니다. 중2의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중2병의 화신... 은 고등학교 시절에나 되서 뒤늦게 찾아왔고, 아직은 순수함을 간직했던 소년이었죠. 지금에야 훤칠한 미남이지만 당시에는 성장 중이라 얼굴이 어딘가 울퉁불퉁했고 여드름이 심해서 자신이 없었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장난치길 좋아하고 쉽게 웃고... 학교와 학원을 반복하는 매일이었지만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친구들과 만나 교재에 낚서를 하고 웃곤 했습니다. 학원가기 전에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학원 쉬는 시간에 동네 오락실에 가서 오락 구경을 하는 등 촌음을 틈타 놀았지요. 만화책도 잔뜩 봤는데, 그 시절부터 매일같이 대여점에서 하루에 한 권씩 빌려 봤습니다. 이 버릇은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 최근 1년 전까지 계속 됐었었네요. 


─중학교 때에 핸드폰이 나왔나 안나왔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적어도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던 시절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집으로 전화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몇몇 친구들 집전화는 외우고 있네요. 그러나 친구가 집에 없을 때면 혼자 나와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애들 갈 곳이야 뻔했기 때문에 몇몇 포인트를 뒤지면 꼭 거기서 자리잡고 놀고 있었기 때문이죠. 가끔 이렇게 동네를 뒤지는 것이 지겨워서 친구들 위치를 알 수 있는 장치같은 것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핸드폰이 나오고, 스마트폰이 나오니 정말 세상 많이 변했죠. 


─핸드폰 문화가 발달하면서 서로 편지 주고 받는 문화가 사라졌다고 서글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바보같다고 생각했지요. 문명은 발달했고 그 시절보다 여러모로 편해졌습니다. 대체 편지를 주고받는 맛이 없어서 문명의 이기를 안좋게 보다니, 이처럼 바보같은 소리가 어디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좀 알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없다는 말은 그냥 상징성이었죠. 중요한 것은 삶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시절 자체가 좋았던 덕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쫓기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제같고, 내일은 오늘같았죠. 하루 하루는 변하지 않지만 언젠간 올 미래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뭔가를 바쁘게 하며 보내도, 설령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려도, 그 시절같은 여유는 되찾을 수 없는거 같습니다. 나이를 먹었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시간이 날 쫓아오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시간을 쫓아가고 있었지요.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로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로와도 그 여유가 얼만큼 남았는지나 재고 있죠.


─세상은 더이상 새롭지 않고 모든 것이 구태의연하기만 합니다. 놀라웠던 경험도 익숙해지고 나면 당연한 것이 되죠. 그것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경험에도 얻는 자극은 점점 줄어듭니다. 어쩌면 그 시절 못지않게 지금 주위에는 즐겁고 재미난 것으로 가득차 있을지 모르지만 머리 속에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서면서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가 버렸지요. 새로운 가게를 봐도 예전처럼 신기해 하기보단 "저 가게는 잘 될까? 망하진 않을까?" 같은 생각만... 이제는 고전게임인 택틱스의 ONE에 나온 것처럼 옛날을 그리워하며 영원을 꿈꾸는 존재가 되었지요. 나도 영원의 세상에 갈 수 있으려나.

음, 푸념처럼 적었지만 비관적인 말을 하고 싶은건 아니고 그 시절과 같은 여유나 즐거움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는 다짐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분명히 즐거웠는데 일기도 안쓰고 블로그도 안하다보니 도무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말이죠. 간만에 떠올릴려고 하니 힘드네요. 요즘도 일기같은 것은 적고 있지 않지만... 트위터 참 편리하고 재밌는데 이런 쪽으로는 도움이 안되고요. 즐거웠던 일들을 기록하면서 기억한다는 것은 여유를 찾는데 꽤 중요한 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저에겐 말이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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