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가던 길의 얘기다.
모인 인원은 마실트와 타오, 망고, 그리고 준하.(미안해, 준하야. 너 본명으로 썼어)

시덥잖은 근래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가던 중에 준하가 갑자기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준하: 아, 그러고보니깐 그거 아냐? 우리 다녔던 중학교, 교복으로 바꼈어.

타오: 어, 그래? 교복으로?


네 사람은 같은 중학교를 나왔는데(...사실은 초등학교도) 그 학교는 정말 드물게 '사복 중학교' 였다.
근래까지 사복을 고집하다가 결국엔 최근에 교복을 맞춘 모양인데, 이 사람과 망고는 이미 아는 얘기였다.

교복에 대한 화제가 나오자 마실트와 망고를 중심으로 교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망고: 결국 우리 학교도 교복이란 대세에 빠져들고 만거지.

마실트: 그래도 꽤 괜찮지 않냐? 근처의 다른 학교의 교복 중에서 제일 디자인이 나은것 같은데?


망고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고, 교복을 본 적이 없는 타오는 어떤 교복인지 궁금해 했다.
그런데 준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준하: 어? 그러냐? 디자인이 어떤데?

(마실트와 망고, 급 당황)

마실트: 뭔 소리야, 마! 네가 얘기를 꺼냈잖아!
'야, 우리 학교 교복이 바꼈어. 그런데 교복 디자인이 뭐야?'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준하: 아, 아니... 난 바꼈다는 것만 알고 어떻게 바꼈는진 몰랐지.


...준하는 대충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이 많은데,
말이 약간 어눌하고 행동이 자연스럽기 보단 어색한 연기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도무지 거짓말이나 연기로 보이지 않고 언제나 진심, 진심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준하의 태도는 언제나 생뚱맞는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교복 이야기로 준하에게 적당히 핀잔을 주면서 다시 길을 걷던 네 사람.
다시 준하가 만화책 이야기를 꺼냈다.

준하: 아, 바키 만화책이 또 나왔던데. 망고야, 바키 16권 봤냐?

망고: (...16권? 또 새로 나왔나?)어, 아니. 무슨 내용이지?

준하: 무슨 고속권인가를 쓰는 내용이던데...

그리고 준하는 바키 16권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명이 시작한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망고가 준하의 말을 막았다.

망고: 아, 그거. 내가 4개월 전에 일하면서 봤던 만화책이지, 아마?
대체 언제적 소리를 하고 있는거냐?


준하는 가끔 시대가 어긋난 소리를 쉽게 하곤 했는데,
한 1~2년 전 이야기를 최근의 소식인마냥 전하는 재주가 있었다.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치 우리가 '정신과 시간의 방' 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된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을 정도다.


(회상)

준하: 얘들아, 파워퍼프걸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데!!

일동: ......(얼어붙음)

(회상 끝)


참고로 저 대화가 오갔던(?) 시기는 2009년이다.
파워퍼프걸이 애니화됐던 것은 언젯적 얘기더라. 아니, 그보다 그거 원작이 있었나?

다른 사람이 한 얘기라면 그냥 헛소리를 한다고 웃어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어울려 온 우리라면 알 수 있다. 아니, 그보다 준하의 저 태도가 확실히 알려준다.
녀석은 진심, 진심으로 저 말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준하의 언동은 어딘가 일본 만화 캐릭터의 속성인 '천연' 을 떠오르게 만든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정말 알 수 없는 언동을 보이면서, 그게 또 장난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날부터 우리는, 준하를 '시간을 달리는 준하' 라고 불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실트: 준하는 말야, 사실 미래에서 온 것이 아닐까?
특수한 임무를 맡고 미래에서 왔지만, 과거인 현재는 미래와 풍습이 너무 틀려서 쉽사리 적응을 못하는 거야.
가끔 사람들과 어울려 말하기 위해 화제를 꺼내곤 하지만, 조사해 왔던 현대의 정보랑 약간의 시차가 존재해서 늘 시간관념이 엇나간 엉뚱한 소리를 하는거지.

준하가 엉뚱한 소리를 할 때마다 다같이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런, 또 실수했다!!' 하면서 당황하고 있을 지 몰라.


...이런 소리를 해가며 우리는 술집에 도착했다.


2. 마실트의 몰락


술집에 왔지만 딱히 술을 좋아하는 인사가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한창.
준하는 타오와 스포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이 사람은 망고에게 다른 얘기를 꺼냈다.

마실트: 망고, 그런데 이젠 진짜로 명텐도가 나온다더라.(GP2x wiz를 말하는 겁니다)

망고: 헐, 진짜로 나온다냐. 어떻데?

잠시 망고와 함께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명텐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그러다가 준하가 갑자기 이 사람과 망고가 말하는데 끼어들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준하:
망고야, 그거 아냐? 명텐도 나온데!!

마실트:
지금 뭔 소리야, 이 자식아!!!!
내가 방금까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본의가 아니게(...), 한순간에 바보가 된 이 사람은 분에 겨워 소리를 쳤고, 망고와 타오는 죽어라 웃기 시작했다.

남들 다 아는 내용을 최신특종독점보도인 마냥 알리는 재주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렇게 타이밍이 끝내줬던 적은 없었다.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였다.
미친듯이 화를 내며(그리고 반쯤은 웃으며) 준하에게 따지자,
본인은 당황하며 자신은 타오와 얘기하느라 못 듣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 뒷골.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마.
녀석의 등 뒤에 개그의 신이 보이기 시작했던건.


3. 망고의 몰락


준하에게 뒤통수를 맞은 이 사람은 침울해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마실트: 안 돼, 녀석의 개그를 이길 수 없어.
준하에겐 그 특유의 태도와 환상적인 태클 타이밍,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준하'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난 평생 개그로 준하를 이기지 못 할거야.


이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망고가 이 사람을 위로하며 말했다.

망고: 쯧쯧, 걱정하지 마, 경훈아.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타임슬립 개그가 뭐가 어렵다고. 내가 복수해 줄께.
(타오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준하에게)야, 준하야!
있잖아, 은지원이 신곡 냈다!

...은지원이 신곡 낸건 반 년도 더 됐다.
망고는 반 년전의 이야기를 마치 최근 소식인마냥 전하는 '타임슬립 개그'를 준하에게 건 셈이지만,

준하: 어? 진짜? 진짜냐???

...너무 리얼하게 받아치는 바람에 망고 스스로 뭐라 말을 못하고 그대로 다운.
(옆에서 지켜보며 이 사람과 타오는 미친듯이 웃고 있었다)

이 '은지원 신곡 개그' 는 후에 파장이 길게 남아서, 친구들 사이에 두고두고 웃기는 이야기로 남았다.
망고는 이 날의 감상을 이렇게 말한다.

망고: 뭐랄까,
큰 맘먹고 공격을 날렸는데 프리더의 기에 흡수되어 반격당한 버독(카카로트 아버지)의 기분이야...


4. 타오의 몰락


다시 화제는 바뀌어서 네 사람이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AVGN의 팬이었던 타오가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타오: 최근에는 AVGN에서 메탈기어도 까더군.

마실트: 뭐, 까려면 깔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소재가 떨어진거 아냐? 예전에는 정말 웃기게 봤는데 말야. 최근분은 전혀 안봤어.

타오: 역시 그게 제일 재밌었지, 슈퍼맨 게임 까던 때가.

망고: 맞아, 맞아..


이렇게 온화하게 대화가 한참 오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 2분. 아직도 AVGN에서 화제가 벗어나지 못하던 때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준하가 말문을 열었다...


준하: 근데 난 AVGN에서 그게 제일 재밌더라. 슈퍼맨 까던 때.

타오:
이 자식이!!!! 아까 내가 했던 말 하지 말란 말야!!!
날 매장시킬 생각이냐!!!!

타오는 불같이 화냈고 또 이 사람과 망고는 배로잡고 웃기 바빴다.
타오는 아까 이 사람이 '명텐도 개그' 당했을 때 웃었던 것을 사과하고(...)
우리 사이에서 '남이 했던 말, 시간 차 내서 다시 하기 개그' 는 앞으로 영원히 금지하기로 맹세했다.


5. 에필로그


그 이후, 준하의 개그는 계속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 했던 시덥잖던 교복 개그도 이 어마어마한 개그의 입질단계가 아니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개그의 폭풍이었다.

그 이후의 개그들은 정상적인 사고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여서 옮기지 않겠다.
그의 개그의 기교들은 이전에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것들이었는데,
그 기교가 하나하나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이기에 후세에 남기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실트와 타오, 망고는 3시간에 걸쳐 신나게 웃고 술집을 나설 때,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마실트: 이길 수... 이길 수 없어...

타오: 만약 이 개그들이 녀석의 의도한 바라면 녀석은 천재야, 하지만...

망고: 만약 우연이라면... 녀석은 신이야.

준하: 아, 맞다. 그런데 말야...

일동: 안 돼!! 넌 더이상 말하지 마!!!!

준하: 명텐도가 GP2x를 말하는 거냐?

일동:
이제와서 뭔 소리야,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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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준하의 개그의 신 전설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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