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영웅의 귀환

메탈기어 솔리드(이하 MGS)1이 나온 것이 1998년 겨울이였다. 솔리드 스네이크를 주인공으로 한 본 게임은 핵테러를 배경으로 한 치열한 싸움을 그렸고 세상을 지켜낸 영웅의 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의 시리즈인 MGS2, 3에서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활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MGS2에 스네이크가 등장하지만, 주요 플레이 캐릭터가 라이덴이라는 애송이였던 실정이라 왠지 주역의 느낌이 살지 않았다.

솔직히 그 때의 스네이크를 회상해 보면 전설의 영웅으로서 '언터치어블' 적인 존재라고 할까? 3번이나 세상을 핵의 위기로부터 구해낸 영웅의 이미지가 높디 높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다. MGS2에서는 라이덴의 시점으로 스네이크가 그려졌기 때문이였고, MGS3에선 스네이크가 두 번이나 쓰러뜨린 빅보스가 주인공이였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여하튼 많은 유저들은 솔리드 스네이크의 귀환을 기다렸고 그 바람은 MGS1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나 MGS4에서 이루어 졌다. 다시 돌아온 솔리드 스네이크는 이전의 매력적인 중년남에서 늙디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올드 스네이크'로서의 귀환. 스네이크의 늙은 모습을 보고 바로 눈치 챘어도 좋을 이야기이다. 바로 여기서, 위대했던 솔리드 스네이크의 전설이 모두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게임과도 같은 영화

잡입액션 게임인 MGS 시리즈에는 원래 '레이더' 가 있었다. 화면 우측 위에 뜨는 레이더를 보며 적의 위치를 찾고, 적들을 피해가는 것이 잠입의 기본이였다. 하지만 MGS3에서 레이더의 존재가 사라지고 주변환경과 동화하는 '카모폴라쥬' 기술을 도입함으로서, 진행이 느리고 귀찮아 졌지만 게임성은 월등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MGS4에서는 이를 한층 더 개선한 '옥토카무' 기술을 도입, 주변 환경에 따라 옷을 일일히 갈아입을 필요없이 알아서 복장이 변하는 신기술을 보여주었다. 이는 미래기술의 발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자꾸 스타트 버튼을 누를 필요없이 빠른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남는다. 그리고 '솔리드 아이' 를 이용하여 적의 위치, 정보 등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의 레이더에 비해 불편한 시스템이지만, 불편한 만큼 게임으로서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MGS4의 게임성에는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다. 잠입액션으로서 잠입의 묘미가 느껴지는 스테이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고, 전작의 여러 기능이 삭제된 것도 그렇다. 이전 작인 MGS3는 정글에서의 서바이벌의 표방했기 때문에 음식 먹기, 응급치료 등의 요소가 있었지만 이번 작에서는 아예 없어졌다. '서바이벌이 아니니깐' 이라고 말한다면 별 수 없고, 스네이크의 나노머신이나 슈츠가 그런 역할을 대신해 준다고 한다면 이해가 간다. 대신 다른 재미난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MGS4에서는 민병대들과 같이 싸운다는 것 이외엔 딱히 재미난 점이 없으니 영...(아, 메탈기어 MK2도 있군) 무엇보다 시리즈 대대로 내려오던 재미, '심심하면 무선치기' 가 별 재미를 선사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어차피 무선칠 상대야 두 명밖에 없지만 기대했던 오타콘과의 농담따먹기가 많이 나오질 않으니 그저 MGS1과 2 초반이 그리워질 뿐이다.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기도 현지조달이 아니라서 초반부터 원하는 무기를 마음껏 얻을 수 있고, 탄환도 부족함이 없다.(오히려 더 많은 무기를 모아서 커스텀하는 재미가 생겼다) 전장을 잠입하다 보니 무기, 아이템 얻기가 너무너무 쉬워져서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할까. 특히 체력 아이템이 큰 문제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회복이 되는데 레이션은 왜이리 많이 나오는지. 체력에 너무 관대하다 보니 보스전에서 두들겨 맞아도 별 걱정이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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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게임의 가장 큰 논쟁거리는 역시 무비일 것이다.
'영화와도 같은 게임' 이라는 말은 아마 파이널 판타지7부터 나온것 같은데,(게임을 만드는 데에 들인 돈이 영화 한 편과도 같다는 점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 같다) MGS2 이후로 이 말은 MGS 시리즈를 가리켜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MGS1은 (지금으로선)다소 조약한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중간 무비를 새로 만들지 않고 플레이화면 그대로를 이용하여 유저들의 게임몰입에 힘을 썼고 그런 성향은 이후 시리즈에 계속 되었다. MGS2에서는 놀랄 만한 그래픽을 선보여 마침내 진짜 영화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MGS3에서는 작중에 '자신이 직접 인물들을 움직이는 영화' 라는 말이 등장한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MGS를 가르키는 말이다.

그리고 MGS4에 와서는 게임의 반절을 무비가 차지하게 된다. '플레이 시간보다 무비를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하는 것이 게이머들의 불만이다.  엔딩 영상이 1시간 반을 육박하니 감탄이 나오면서 동시에 질리기도 한다. MGS4는 시리즈의 주인공이였던 솔리드 스네이크의 마지막 전설, 모든 것을 끝내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게임성보다 시나리오(무비)를 중시한 점은 조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무비도 단순히 '영화를 만들었다' 고 생각하기엔 힘들다. 코지마 감독이 만든 무비는 위의 말마따라 단순히 '자신이 직접 인물을 움직이는 영화' 가 아니다. (MGS4가 영화라는 시점에서)스네이크라는 주인공을 자신이 직접 움직여서, 적에게 둘러쌓이거나 습격을 당했을 때에 몰입감과 집중도를 강하게 끌어올린다. 영화의 주인공은 알아서 잘 처신해 나가지만, 게임이기에 '내'가 잘 해야만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후반부, 스네이크가 지친 몸을 이끌고 마이크로파가 흐르는 통로를 지나갈 때에, 영화라면 그저 지켜볼 장면에서 우리는 버튼을 연타하며(...) '일어나! 스네이크!!' 를 외치게되는 것이다.(간만에 손가락 부셔질 뻔 했다)

더군다나 무비 곳곳에서 나타나는 게임적인 요소, 그리고 게임이기에 비로소 표현이 가능한 장면들은 일반 영화에서조차 접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이런 점을 보면 '영화같은 게임' 이라기보단 '게임같은 영화' 다. '비주얼 노벨' 과 같이 영화와 게임을 접목시켜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비주얼 노벨은 게임이 아냐' 라고 말한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MGS4는 '게임을 즐긴다' 는 관점보다는 '스네이크, 전설의 남자의 마지막 싸움을 지켜본다' 는 관점이 더 강하다. 오랫동안 우상이였던 노영웅의 마지막 싸움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저 모든 것이 용서되는 느낌이다...
아, 게임성이 나쁜 것은 아니다. 분명히 재미는 있다.


최고의 게임이란 이런 것이다!

MGS4가 해외웹진에서 만점행렬을 이어가던 중에 한 웹진이 10점 만점에 8점을 주어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이에 게이머들이 해명을 요구했고, 웹진 관계자는 여러 단점을 들어 8점을 매긴 이유를 설명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MGS4는 욕을 하자면 얼마든지 욕할 수도 있는 게임이다. 가장 큰 논란거리인 무비와 플레이 타임. 그리고 게임성의 문제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여러가지 문제들... 잡지의 리뷰에서는 '좋은 점을 세자면 끝이 없으니 단점만을 얘기한다' 라고 했는데 그 단점이 적잖케 나오는 것을 보면 MGS4는 결코 완벽한 게임일 수는 없다. 그 단점 중에 하나를 꼽아보면 '오직 팬들만을 위한 서비스 게임' 이라는 점이다. 아마 무비와 더불어 MGS4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싶다.

MGS4는 팬이 아닌 유저들에게 극도로 불친절한 게임이다. 시리즈 단 한편이라도 빼먹은 유저에게도 불친절하다.(MGS3에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모든 스토리를 알 수 있게 한 EXISTENCE가 존재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일단 시나리오는 이전 시리즈를 모르면 전혀 이해를 못하게 되어있고, 게임의 명장면은 대부분 이전 시리즈를 아는 사람들만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장치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이 팬들에게는 천국, 새로운 유저들에겐 지옥이 되는데, 과학시간인 마냥 유전자와 나노머신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장면에서 새로운 유저들은 뭔 소리인지 몰라 지겨워 할 때, 팬들은 '과연! 그런 것이였구나!!' 하고 감탄하는 것을 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게임의 일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반에 걸쳐 그렇다. 실로 끔찍할만치 새로운 유저에게 불친절하다 말할 수 있다. 애초에 만들 때에 새로운 유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MGS4는 그런 식으로 극단에 치우처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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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S4는 어중간하기 보단 팬들만을 위하길 바랬다. 그래서 그 재미는 팬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것도 단지 전 시리즈를 다 해본 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걸쳐 꾸준히 플레이 해 온 팬이 대상이다. 그렇기에 MGS4의 재미와 감동을 100% 느낄 수 있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마지막, 스네이크와 리퀴드와의 최종결전을 지켜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외친 것과 같이.
'젠장, 이것은... 정말 최고다!!'


전설의 영웅, 그 마지막 싸움

광고문구와 같이, MGS4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마지막 싸움을 그리고 있다. 시나리오의 완결편인 동시에 전설의 영웅의 마지막 싸움이다.(게임성을 이은 후속작은 또 나올 수 있다) 시나리오로서 완성도는 좋은 정도라고 할까. 과거의 작품들은 후속작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후속작은 과거의 작품들을 수렴하는 법이다. 그 때문에 과거의 설정이 묘하게 변하거나 억지로 짜 맞추느라 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MGS 시리즈는 그 부분을 잘 넘겼다. 작위적인 느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그렇군!'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였다. 오히려 문제라면 MGS4의 스토리가 조금 난해하다는 것이다. 엔딩까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다는게 꺼림직하다. 특히 나오미라던가, 나오미라던가, 나오미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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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것보다 솔리드 스네이크의 귀환과 마지막 활약상은 정말 훌륭했다고 본다. 몇 차례나 국가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구한 영웅. 이제는 노영웅이 되어 마지막 싸움에 나선다. 세계관은 근미래, '전쟁→전쟁고아 발생→고아들이 군인들 손에 길러져서 군인이 됨→전쟁' 과 '전쟁→군수산업 활발→경제 활성화→전쟁' 이라는 두 개의 악순환과 나노머신을 통해 전쟁을 실시간으로 통제하는 '애국자들',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한 리퀴드의 궐기... 처음부터 좋지 못한 상황에서 시작하여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악화일로를 걷는다. 후반에 가면 스네이크 이외에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그 희망마저 가망성이 희미하다. 하지만 스네이크는 노로의 몸을 이끌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달았지만 자신의 싸움을 끝마칠 때까지 결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안타깝고도 고귀한 싸움을 보면서 게이머들은 '이젠 그만 쉬었으면 좋겠다' 라 생각한다고 한다.

이번 작에는 메탈기어 MK2를 이용하여 스네이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오타콘, 스스로 절망에 빠져 있으면서 스네이크와 함께 싸우는 라이덴. 스네이크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이 축제는 최후의 싸움으로 적절했다. 음, 무선치기 농담따먹기가 적었던 만큼 스네이크와 오타콘의 얘기가 많이 좋았었는데 특히 본작에 세 번이나 나온 '오타코오오온!!!!!!' 외치는 스네이크가 인상깊었다.(위험해지면 오타콘찾는 스네이크?) 개인적으로 MGS4의 최고 명대사라고 생각하는데(...) 혹자는 라이덴의 '나는 번개, 비의 화신' 이라고 주장한다나 뭐라나.

스네이크와 리퀴드(오셀롯)와의 오랜 인연, 그리고 대망의 결전과 같이 전설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MGS4는 정말 부족함이 없었다. MGS4가 지닌 의의에 충실했다고 본다. 스네이크와 리퀴드의 마지막 결전 동영상은 어떻게든 꼭 볼 만한 희대의 명장면. 꼭 볼 것을 추천한다.


좋은 것이구나...

자연스러운 전작과의 연계, 뛰어난 그래픽과 연출기법, 팬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MGS를 위한 MGS4.
메탈기어 시리즈는 본래 '메탈기어'라 하는 최종병기를 소재로 삼았지만 시대가 지나며 등장하는 인물들과 스토리가 더 커진 작품이였다. 코지마 감독은 MGS4로 점점 커져가던 메탈기어 시리즈에 하나의 막을 내렸다. 엔딩에서 시리즈 전체를 뒤집는 최강의 반전을 선보였던 것을 보면 분명 끝낼 생각이긴 했구나, 싶다. 설령 후속작이 나와도 그건 이 세대가 아닌 새로운 세대일 것이다.

부족함이 없었던 완결편. 참으로 좋은 결과다. 언제나 다음 작품이 기대되었던 것과는 달리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엔딩의 오타콘의 말마따라 솔리드 스네이크의 전설을 지켜본 목격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는 안도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지만 전설은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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