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이라는 애니가 그렇게 재미있다더라~ 하는 얘기를 무척 많이 들었던거 같습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 "어디 함 볼까~" 란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지만...
이 몸은 선천적 모에부타였기 때문에 미소녀가 나오지 않는 애니는 역시 쉽사리 손이 가질 않더군요.

그래서 완결이 나고 한 분기가 지난 후에야, 집 TV에 애니플러스 결제한 것을 계기로 핑퐁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소녀 좆까! 핑퐁은 갓퐁이었다!!!!!!!



─핑퐁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한 마디로 정리할 수도 없고,
상세히 풀어 써보려 해도 이 사람의 감상글 솜씨가 후달리기 때문에 완전히 옮겨 적을 순 없을겁니다.
그래도 언제나처럼 인상적이었던 부분 위주로 좀 적어 볼까요.



─주인공 중 한 명인 '스마일' 은 로보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희노애락 감정표현이 없는 덤덤충.
또 하나의 주인공인 '페코' 는 언제 어느 때나 유쾌하고 장난기 있는 친구죠.

정반대인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죠.
도통 말이지, 기쁘거나 슬프거나 낙담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기 쉽게 보여주질 않아요.

요즘 라노베를 보면, 캐릭터의 성격이나 생각이 한 눈에 알기 쉽게 표현되곤 합니다.
츤데레, 라고 해서 알기 어려운 캐릭터가 아니죠. 오히려 너무도 알기 쉽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알기 쉬운 것이 그 캐릭터의 매력이고 작품의 매력인거 같습니다.

하지만 스마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뚝뚝. 사람들은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거 같다." 고 말하지만 그때마다 스마일은 말합니다. "나도 사람입니다. 들뜨거나 침울해 하거나 하기도 한다고요." 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그것을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표정도, 태도도 거의 변하지 않는데 지금 스마일이 웃는건지 슬퍼하는 건지 우째 안답니까.

그러던 와중에 스마일이 스카웃 제의를 받고, 자신을 가르치던 코치가 그것에 찬성했다는 것을 알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됩니다. 시종일관 무뚝뚝한 모습을 보여준 스마일이지만 나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죠. 사실 그 특유의 연출로 스마일의 속내가 간혹 나오긴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정말 알기 어렵습니다. 뭐, 작중 인물들도 스마일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데요.

코치는 스마일이 재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등을 떠밀어줄 뿐이고 스마일은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스마일에게 그런 생각은 넌센스였습니다. 왜냐면 그는 탁구에 인생을 건게 아니라 그냥 '즐거워서' 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부모님이 이혼한 스마일에게 있어, 코치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쇼크를 먹은 거겠죠.

이러한 이야기가 작중에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 눈에 알아먹기 힘든 관계지만 라노베같은 가벼운 이야기에서 도무지 풀어낼 수 없는 깊이가 담겨 있지요.

"사랑한다면 억지로 끌어안고 키스해 줘라" 라는 충고를 받고 코치는 스마일을 기다립니다. 결국 탁구장에 돌아온 스마일은 자신을 기다린 코치를 보고 놀라죠. 선수가 없으면 코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말로 스마일이 혼자가 아님을 말하며 코치는 다소 강압적으로 말합니다.

"한 번 더 이러면 맞는다...

두 유 언더스탠드? 미스터 츠키모토?"

그 질문에 스마일은 (그답지 않게)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예스...

예스, 마이 코치."


스마일이 코치를 특별히 존경했다던가 하는 묘사는 이전에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귀찮고 짜증나게 생각했지요.
그렇기에 대체 언제 스마일이 코치를 존중하고 멘토로 여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안개와 같이 애매한 관계가 계속되던 중 스마일의 저 대사가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카타르시스가 어마어마한 감동을 주더군요.


페코는 스마일과 반대로 오버액션에 말이 많지만 그래서 도히려 속을 알기 힘든 녀석이었습니다.
자신이 좌절할 때조차 농담으로 얼버무리기 때문에 대체 저녀석은 진짜 상처입은건지 어떤건지 알 수가 없었죠.
초중반에 페코가 방황하는 장면이 있는데 도통 왜 그러는지 한참을 몰랐습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재능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에 배신을 당한거 같아서... 였다는군요.

자신의 좌절조차 농담으로 얼버무리는 페코였지만 그래도 진심이 되는 순간에는 아무 얼버무림 없이 속내를 보여줍니다. 그 점은 확실히 스마일보다 표현이 확실하죠.


여하튼 이 애니는 도통 사람 속이나 인물관계를 알기 쉽게 표현해 주지 않습니다.ㅋㅋ
하지만 알기 어려울 뿐이죠. 스마일도 페코고, 그 외에 다른 캐릭터도 분명한 '캐릭터' 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현실의 사람과 같은 복잡한 캐릭터성을.


─음, 그리고 최애캐인 콩. 중국인 콩 말이죠.ㅋㅋ

첫 등장은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점점 인격적 성장을 거듭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특히 기차 타고 어머니 배웅 받으며 떠나는 장면과, 크리스마스 날 학교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이 사람이 핑퐁 애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무엇보다 일본 애니에서 중국인이 나온다고 중국어로 말하는 장면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음요ㅋㅋㅋ


─그 외에 드래곤이나 아쿠마나,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11화 밖에 안되는 짧은 분량 속에 이토록 많은 감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네요.

스포츠물로서 뜨거운 전개도 잘 살아있고, 승자의 고뇌와 재능, 노력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이야기 구조 자체는 단순했지만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연출과, 어찌보면 알아먹기 힘든 캐릭터의 속내와 관계를 표현한 연출은 그야말로 역대 애니 중 최고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네요.

다다미 넉장 반 이후로 정말 재밌게 본 명작 애니였습니다. 한동안 계속 빠져 지낼 거 같네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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